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미지. 소매치기들, 2013


















* 'To Better Lifestyle with internet' 이라는 책자(2014년 발행)를 위한 인터뷰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_스마트폰을 안 쓰는 이유가 있으세요? 특별히 작가로서 취하는 이유가 있다고 들었어요.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빠르잖아요. 언젠가 스마트폰의 결정판 같은 것이 나올거라는 막연한 기대감같은게 있었죠(웃음). 현재를 웹과 디지털의 시대라고 한다면 지난 세기는 영화의 시대라고 할 만하죠. 저는 지난 100년동안의 시간과 현재를 서로 겹쳐보면서 작업의 영감을 많이 얻기도 해요. 예를 들어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라는 영화가 있죠. 그는 지난 세기 초의 엄청나게 혼란한 시기에 카메라를 혁명의 도구로 선언하고 그런 생각을 실천했어요. 그런데 21세기에는 모든 사람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아티스트만 (창작의 도구로)카메라를 가졌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러면 아티스트로서 카메라가 없는 포지션을 취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지요. 하지만 재료가 있어야 하니까 웹에서 찾은 이미지나 영화에서 찾은 이미지, 사람들이 올려 놓은 이미지를 사용했지요. 그런 다음 또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생각했죠. 고해상으로 잘 찍은 것만 취할 건가, 화질이 안 좋고 입자가 거친 걸 취할 건가. 거기서 또 후자를 택한 거죠. 시대의 주된 흐름과 계속 반대로 가보는 거죠. 그러면서도 웹과 디지털이 가진 시대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 그런것에 관심이 있었죠. 그동안 스마트폰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것에 좀 거리를 두었던 것도 이런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해요.



이미지. 신세계, 2006


















_웹을 다루는 방식에서 보면 이미지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사의 로고만 모아서서 만든 영상 ’New World’, 부산아시안 게임에 온 북한 미녀들의 이미지를 모은 작품 ‘Fatal Beauty’, 서울의 사진과 전화벨 소리로 구성한 ‘호출’도 있었어요. 이미지를 재가공, 재배열했을 뿐인데 어떤 건 공포, 어떤 건 두려움 같은 감정이 생겨납니다. 이미지를 재가공, 재배열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방식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는 편의상 할리우드적인 방식으로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매 장면마다 계속 이유를 만들면서 개연성을 부여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방식이죠. 다른 한 가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어떤 세계가 이미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고 상정하고 마들렌 같은 매개체를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접속을 하게 하는 방식이죠. 대부분의 작가들이 전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논리적으로 구축해요. 전자의 태도가 우세한 셈이죠. 후자는 항상 소수였지요. 대부분의 영화는 시간과 기억을 희생시켜서라도 이 세계를 어떤 틀에 끼워 맞추죠. 그러니까 이해하기 쉽죠. 하지만 소수의 영화는 우리가 유용성의 원칙을 위해 폐기한 그 시간 자체를 보여주려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겨워 하는 거죠. 시간과 기억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에요. 하지만 시간과 기억에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 역사도 다르게 볼 수 있고 사물도 다르게 볼 수 있어요. 전 예전부터 후자의 방식을 좋아했어요. 제 작업들은 그 방식을 웹과 디지털에 적용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_후자의 태도가 웹의 존재 이유 아닐까요? 웹의 속성은 불규칙하고 비논리적이고 비선형적이니까요.

그렇죠.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제 작업을 이해 못하겠다는 분들도 있어요. 사실은 동일한 원리거든요.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예술가들이 희망을 걸었어요. 인류에게 다른 차원이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결국은 그렇게 안됐죠. 그 이유는, 기술이 사람에게 주도권을 제안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그 기술을 이용하기 부담스러워 하는 거 같아요. 트위터, 페이스북, 스마트폰, 증강현실 등 웹은 끊임없이 발전해왔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네가 주인이 되라’고 말을 하는데 사람들은 결국 그렇게 하지 않죠.



이미지. 지팡이, 2014













_작가님이 만든 웹사이트 '비말라키넷'(www.vimalaki.net)’은 전용 상설 극장으로, ‘C12픽쳐스(http://c12p.com)’는 사설 포탈 혹은 영화제작사라고 명시돼 있어요. 작가님의 작업들이 기획, 전시, 상영되는 이 곳은 가상의 세계 안에 있는 또 다른 가상의 공간입니다. 이 곳에서 관객들이 작품을 능동적으로 보길 바라세요?

네. 그렇죠. 영화의 세계는 이미 우리의 무의식이 되었고 새로운 자연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클래식 느와르 영화들의 무드를 모방하려 하는 어떤 광고를 상상해 볼 수 있죠. 대도시를 배경으로 남자는 스포츠카를 몰고 여자는 팜므 파탈의 어떤 전형성을 연기하죠. 광고는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을 자극하는 거잖아요. 세련된 광고일수록 제품 그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 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앞서 이야기한 영화적 무의식에서 온 거죠. 제 생각에 21세기 컨텐츠의 재료는 현실이 아닌, 기술을 매개로 한번 재현된 이미지들에서 옵니다. 두번의 과정을 거치는 거죠. 이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사실 별 관계가 없지만 어떻게 보면 오늘날에는 그게 더 ‘리얼’한 것일 수도 있겠죠. 이제 웹과 현실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둘은 서서히 통합되고 있고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작품을 본다는 느낌보다 서핑하고 경험한다는 느낌으로 제 작업들을 대한다면 저야 행복하겠죠.



이미지. 뇌사경, 2009-


















_1998년부터 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웹을 둘러싼 세계 역시 변화되고 있는데, 그 변화 중 특히 지금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특수효과를 사용합니다. 예전의 특수효과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지가 않죠. 예를 들어 공룡 같은 괴수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건물들은 미니어쳐임이 쉽게 드러나고 공룡은 투박하게 그 공간에 덧 붙여져서 움직이죠. 즉 현실과 영화적 공간이 어설프게 결합되어 있는거죠. 그런데 지금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이음매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봐야죠. 앞으로는 결국 없어질 거고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보면 마치 특수 효과를 보는 거 같아요.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본모습보다 더 연출된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다 보면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진짜 인격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개인이나 사회 전반에서 여러가지 차원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저 한테는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이미지. 대나무숲의 유령들, 2012













_국제 도메인 사냥꾼이 작가님이 방치해놓은 웹사이트를 사서 전세계 모든 상품을 연결하는 사이트로 만들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작업으로 착각한 적이 있죠? 끊임없이 변모하는 웹의 속성이 주는 아이러니한 결과 같습니다.

맞아요. 저를 사람들이 자꾸 웹 아티스트로 범주화시키려는 것에는 전형적인 20세기적 태도가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하면 저라는 존재가 편리하게 정의 되잖아요. 제 관심사는 좀 더 포괄적이고 웹 말고도 많은 걸 도구로 사용하는데 말이죠.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 테잎이라는 몇 십년동안 지속된 저장매체를 연상해 볼 수 있죠. 그런데 저장 매체가 언제 업그레이드 될지 모르는 21세기에 웹 아티스트라고 규정하면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꼴이 돼버려요. 이미 저장매체의 시대도 가고 있고 클라우드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잖아요. 이렇듯 앞으로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평생 웹아트만 하는게 말이 되냐고요(웃음). 어쨌든 도메인은 다시 찾았어요. 그 사이트도 제 작업의 한 부분이니까 나름 중요하죠.


_앞으로의 인터넷 환경, 어떻게 달라질 것 같나요? (공통질문) 


제 생각에 테크놀러지의 근본적인 발전 방향은 비가시적인 것이 되는데 있는 거 같아요. 즉, 결국 사라짐으로써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려 하는 거죠. 모니터라는 것도 한시적인 거 같아요. 구글 글래스를 거쳐 우리 눈의 각막으로 그렇게 점점 우리의 뇌와 가까운 쪽으로 뭔가가 진행되고 있고 아이폰이 얇아지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봐요. 나중에는 SF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뇌에 칩 하나 꽂으면 모든게 다 해결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 이후도 뭔가가 있겠지만... 미래의 인터넷도 우리 신체와 완전히 통합되어 현재와는 전혀 다른 뭔가가 되어 있겠지요..



이미지. 태평양, 2009












_인터넷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요? (공통질문)

말할 수 없어요. 무엇이 될 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디지털이나 인터넷은 우리가 불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과 닮은 무엇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과 닮은 어떤 상태로 진화하는 거죠. 사이버 펑크가 효시가 되어 바이오 펑크등으로 진화하고 있는 SF장르가 이런 지점을 잘 보여주죠. 그렇다면 ‘부디스트 펑크’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봐요. 이런 주제로 언젠가 전시를 함 해볼까 이런 생각도 있지요.


(interview with 나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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