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프레임 사이즈, 공간에 대해


뇌무덤 Brain Tomb, 오브제, 2009


프레임 사이즈, 공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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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이번전시는 플라토라는 실재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고 참여 작가의 대부분이 현실공간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제안했다. 영화와 가상공간에 주로 관심이 많은 노재운씨는 현실과 가상공간이 접합되는 부분인 프레임에 주목했는데,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이 흥미롭다. 1970년대 Support/Surface 그룹의 작업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작업에 대해 설명 바란다.

프레임작업이 나에게 흥미 있는 점은, 우리가 프레임 없이 이미지와 대면하는 세계의 초입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앞으로 테크놀로지는 더 이상 프레임에 제한 받지 않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고 우리 또한 어떤 한계나 어색함 없이 이런 이미지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술의 긴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이런 식의 탈 프레임화는 불과 몇 년 전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100년간 영화 속에서 명멸했던 프레임들을 이용한 작업들은 바로 앞의 과거를 현재화하는 방법이면서 그 이미지들이 가진 어떤 한계나 골격을 이용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 작업은 어떤 변형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이 프레임들은 어떤 조합이냐에 따라 건축-창문-사다리-무덤-조경-거울 등으로 무한 변형이 가능하다) 이것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Q1-1) 예를 들어 프레임의 몇가지 사례를 소개한다면?

최초에 그것은 무덤의 형상으로 전시되었다. 그때 그것은 마치 버려진 뼈 무더기처럼 아무렇게나 쌓인 형태가 되었다. 또 한 번은 창문에 투명한 여러 개의 색면으로 부착되어 햇빛을 내부 공간으로 통과시키는 형식으로 설치되었다. 최근에는 사다리나 거울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특히 사다리의 경우 계단이 프레임사이즈별로 구성되고 그 간격의 차이 때문에 실제로 사용 가능한 사다리가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지와 ‘구원’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살짝 실어 보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시리즈의 결정판으로 프레임들로 디자인된 건물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건물 안과 밖을 매개하는 다양한 프레임들과 여러 고안된 장치들은 이 건물을 하나의 살아 있는 건축-영화로 만들어 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Q2) 이번 프로젝트의 제목인 [Double-flowered]는 '겹꽃'이라는 원예용어로 알고 있다. 이 제목의 의미와 그것이 포괄하는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설명 바란다.

일단 영어로 발음될 때 이 단어는 마치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들린다. 비슷한 제목으로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같은 영화가 있다. 그러니까 나한테 이 단어는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어디엔가 존재할 거 같은 그런 영화가 연상되는 거다. 우리 무의식의 바다 위에 왠지 떠 있을 거 같은 어떤 막연한 영화 말이다.
또한 원예적인 관점에서 이 용어가 나한테 흥미를 주는 점은 이 단어가 '우연'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꽃잎이 몇 겹이 더 피어날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내가 만든 공간을 어떤 막연함과 우연에 노출시키는 것은 나한테도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해 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공간이 가진 어떤 '개연성'과 '인위성'이 이런 식으로 무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Q3) 공간의 경험은 '순간 이동'이라는 상상력을 동원할 때 더욱 실감이 나는 것 같다. 영화에 빗댄다면 SF 유형에 해당할 이번 프로젝트에 동원한 장르적 클리쉐가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나한테 영화란 극장에서 보는 그런 영화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영화의 특정 장르를 말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내 작업의 성격이 영화라는 강력한 예술적 형식에 너무 쉽게 환원되기 때문이다. 내가 작업의 레퍼런스나 출처를 되도록이면 밝히지 않는 이유도 어느 정도 그런 것과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내 작업에서 뭔가 SF적인 냄새가 나고 또 나 스스로도 그런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최근에 내게 관심 있는 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문학, 산수화, 개념미술, 회화..등등)에서도 가져온 모든 장르적 클리쉐를 최대한 동원해서 뭔가 'SF'적으로 재구성해 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필름이나 카메라를 통하지 않는 나만의 SF를 만들고 싶은 거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아는 공상과학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거 같다. 그것은 공상과학이라기 보다는 미래 그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 이기 때문이다.

Q4) 영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사이 공간'을 제시하면서 작가는 동시대 문화와 미술에 어떤 발언을 덧붙이고자 하는가.

이 공간을 포함해 그 동안 내가 만들어 온 공간들은 현실과 어떤 상상되는 공간 '사이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현실에 '덧붙여지고 확장되어 부가된 공간'처럼 생각된다. 마치 인터넷과 시뮬레이션 문화로 대표되던 '가상현실'이 하나의 폐쇄계에 속했다면 스마트폰 등으로 대표되는 '증강현실'의 공간은 비로소 그것에서 벗어나 현실에 덧붙여지는 공간이 된 것처럼 말이다.
'증강현실'의 공간은 실제 우리의 삶과 행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인간 지각의 확장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생활적인 차원에서 실현되는 공간이다. 내 생각엔 영화를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어떤 관념적 가상으로 위치시키기보다 그것 자체로 리얼한 '증강의식'으로 위치시켜 볼 수 있을 거 같고 그런 식으로 내 작업의 현실성과 직접성, 사회성을 획득하고 싶다. 물론 이런 생각은 앞으로 어떤 현실이 출현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나에게 영화가 중요한 것은 이렇듯 새롭게 생성되는 각종 '현실'들의 고향이 바로 '영화(사)'이기 때문이다. 가령 가상이나 증강현실도 이미 영화가 잉태하고 있었고 또 그 속에서 가시화되었던 개념이다. 그래서 영화를 이용한 작업은 나에게는 일종의 고향의 전원풍경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속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의 수많은 미래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벤야민에게 파리가 19세기 자본주의의 수도였듯이 나에게 영화(사)는 오늘날 우리 무의식의 수도이기도 하다. 영화(사)의 많은 숨겨진 거리와 잊혀진 골목에서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많은 기억들과 시간의 조각들을 찾아낼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급변하는 현실과 무의식의 공간을 영화적 풍경으로 재설정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현실을 추동하는 어떤 강력한 힘들에 환원되지 않으면서 각자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실제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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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전시 '스페이스 스터디' 전시도록을 위해 안소연 플라토 디렉터와 했던 인터뷰입니다. 도록에는 Q1-1) 항목이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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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사이즈 관련 c12p 작업들(2009~2013)

뇌무덤, 2009
세상의 모든영화, 2009
수상한 승객들, 2011
사다리, 2011
본생경, 2011
가장 높낮은, 2011
병원선, 2011
대나무숲의 유령들, 2012
화면비악보, 2012
방파제, 2013
소매치기(들), 2013
프레임웍스_동백, 2014
프레임웍스_로프트, 2017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