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malaki.net 2000~ |
비말라키넷 VIMALAKI.NET
현시원(기획), 2012
Work Description/
노재운의 [비말라키넷 VIMALAKI.NET]은 2000년 작가가 스스로 만든 ‘웹-극장’이다. ‘극장’이라는 표현은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한데, 작가는 채집한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이 ‘웹-극장’에서 동시 상영되는 웹-영화를 올려둔다. 비말라키는 산스크리트어로 유마(維摩)를 뜻하며 이는 다시 번뇌가 들끓는 속세에서 청정함을 발하는 것, 더러운 때가 없음을 뜻한다. [비말라키넷 VIMALAKI.NET]에서는 속세의 시공간 개념과 상관없이 클릭만 하면 노재운의 영화가 계속 상영된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디트 타이틀 이미지로 이뤄진 3분 39초의 작업 [신세계] , 미디어에 등장한 북한 여성 응원단들을 클로즈업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비롯해 [호출], [얼음의 여왕] 등 십여 편에 이르는 노재운의 영화는 [비말라키넷 VIMALAKI.NET] 이라는 인터페이스 공간을 폭넓게 공유한다. 그러나 한편 [비말라키넷 VIMALAKI.NET] 은 늘 깜박이는 온라인이 아니라 언제든 작가가 불을 끄고 문을 닫아버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다.
깨진 이미지들의 웹-극장/
노재운의 작업은 몽타주와 점프로 이루어진다. 불연속적인 이미지들과 출처를, 아는 이는 알고 모르는 이는 모를 수밖에 없다. 영화사적 장치들이 곳곳에서 고개 드는 그의 작업은 무의식의 논리를 따르는 도약들이다. 일관된 주제나 내러티브를 찾아 붙이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을 보면서 뭘 해야 하나? 웹 사이트에서 클릭한 영상에 다시 손을 대지 않는 이상 각각의 작업은 계속 반복 상영될 것이다. 다루는 대상도 장르도 이야기도 파편적인 속성을 지닌 노재운의 작업이 비로소 연결되는 시공간은 작가가 만든 [비말라키넷 VIMALAKI.NET], [http://c12p.com] 같은 그의 웹사이트에서다. 2000년도에 웹 작업을 시작해 지속하고 있는 작가는 웹 아티스트나 넷을 다루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범주화되지 않는다. 그는 자체 제작한 인터페이스 공간에 무엇인가 차갑고 정체 불분명한 것들을 빼내고 다시 넣으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꾼 장치(작가의 말)”로서 20세기 후반의 웹과 19세기 이래의 영화사를 병치시킨다.
2004년의 첫 개인전 [스킨 오브 사우스 코리아]와 [스위스의 검은 황금](2006), [시간에 대해](2009), [목련아 목련아](2011) 등의 전시를 살펴보면 그는 비디오, 오브제, 그래픽 작업에 이르는 전 방위적인 매체를 다룬다. SF 와 느와르, 영화의 시작과 끝, 지옥을 다루는 방식과 사우스 코리아를 비춰내는 단면들이 다층적으로 공존한다. 전시장만을 살펴본 관람자라면 최대한 혼란을 방치한 이 시공간의 질서에 의아할 법 하다. 전시장에 놓인 별개의 불연속적인 작품들은 단선적이지 않은, 풍부한 것들에 둘러싸인 이상한 시공간 자체가 된다. 이것은 저장고와 상영 역할을 하는 노재운의 웹 극장에서 걸어나온 무의식의 물화(物化)다. 특히 2009년 초에 있었던 개인전 [시간에 대해]와 그 해 여름에 있었던 [에르메스 미술상 2009] 전시는 웹 극장에 있던 노재운의 작업들이 오프라인의 생명체로 탈바꿈하는 번역의 시간들이었다. 노재운의 작업과 국내외 영화사의 온갖 시청각적 각주들, 당대 이미지에서부터 동양 산수화에 이르는 파편들을 집대성한 전시장은 시간에 대한 노재운의 반응과 머릿속 풍경이 혼재된 곳이었다.
2010년 여름 작가 노재운은 “영화를 물론 아주 좋아한다. 이 말은 굉장히 중의적일 텐데, 나는 영화를 찍고 싶지만 카메라로 찍기는 싫은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비말라키넷 VIMALAKI.NET]에서 상영되는 그의 작품들은 현실의 미디어가 다루는 사건들과 영화사에서 따온 수두룩한 각주들을 지속적으로 몽타주한다. 노재운의 시각은 영화가 고정화한 시공간에서 다시 미래와 과거의 시공간, 심리적 상태들을 배치시킨다. 이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작업을 제작하고 후작업하고 전시하는 여러 시공간이 펼쳐진 인터페이스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 인터페이스는 “무엇이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시작하는 발판으로” 작동한다. 현실을 보는 그만의 공간이자 현실의 여러 미술-공간들을 걸러내는 필터로서 그의 인터페이스는 어떤 가까운 미래까지 계속될까.
(문지문화원 사이 아트폴더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