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운: 하이퍼 내러티브에의 개입

SSKR_Worm Project, 2004

노재운하이퍼 내러티브에의 개입

            
문영민 (미술비평작가)

            갤러리라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축구장휴대폰전철대합실핸드폰  공공의 영역에서 자신의 작업을 디스플레이하고 싶다면서인터넷은 단지 하나의 극장” 내지는 데이터베이스 생각하는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가장 쉽게 접할  있는노재운은 어떻게 의미를 생산하고 있는가?        

            노재운은 인터넷이라는 공공영역에서 무한히 떠도는 이미지텍스트사운드들의 채집과 절합을 통하여 재생성된 의미체계를 사이버 공간에 새기는 (inscribe) 작업을 하고 있다그것은 인터넷의 환경 속에서 유저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일종의 수행적인performative 성격을 취한다그의 비말라키 사이트 (http://vimalaki.net) 를 보면 우선 밝고 가벼운 색채와 깔끔한 디자인을 통해 보여지는 높은 시각적 세련미를 느끼게 된다웹서핑에서 찾은 파편화된 사진들음향들그리고 상업적 로고와 만화적 이미지 등이 그의 그래픽적 감수성과 숙련된 디지탈 기술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그가 차용하는 이미지들의 조합은 피상적으로는 아무런 위계질서가 없는 듯 하며 이미지들 사이에는 특기할 만한 관계가 없는 듯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그가 선택하는 이미지들과 그것을 배열하는 방식은 전혀 무작위적이지 않으며오히려 무수한 이미지들 중 엄선되어디지탈 이미지프로세싱를 거친 심사숙고된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그것은 파편화된 이미지일 뿐이지 중립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노재운은 오프라인 전시공간에서나 저널의 페이지 상에서 역시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의 고해상도 출력물들을 선보여왔다그중에는 하드에지 기하학적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운동경기장의 모습들, 9/11 뉴욕 쌍동이 빌딩의 폭발과 연기, KAL기 폭발의 주인공인 김현희무작위적으로 배열된 듯한 칼라스와치남북한의 미녀들송두율 박사만화 캐랙터해골 등이 포함되며마치 이들을 조망하는 듯 위로 떠다니는휴렛 팩커드사의 로고를 변형시킨 십자와 비행기 모양이 있다이러한 이미지들은 노재운이 인터넷에서 따온” 남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온 스킨들인데여기에 그는 최근 다음과 같은 일련의 이미지들을 추가했다독일 나치정권 당시의 알베르트 슈페어의 건축물구미의 박정희 체육관스타워즈 6의 죽음의 별미국 챌린져호의 폭발허블 망원경한국의 고속열차 KTX, 아놀드 슈와즈네거드릴머신 등이러한 이미지들과 더불어 <누나는 공산당>의 상징적 간결성은 표면에 대한 집착에 있어서 앤디 워홀을 연상시키면서도노재운의 작업에 일관되게 느껴지는 속도감과 탈물질성은 워홀은 아날로그시대의 기계였음을 알아차리게 한다워홀이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비참한 사건들과 스타들의 얼굴들을 반복적으로 반기계화된 공정으로 이미지화했다면노재운은 무작위적으로 이용 가능한 환경 (random access environment) 에서 추출한 자료들을 기억의 대상으로 편역하고 있다.

             노재운은 신발의 이미지와 뉴욕 쌍동이 빌딩이 폭발하는 이미지를 어떤 깊이도 의미도 없이 받아들이고 그 이미지들을 형태적인 차원에서 리사이즈하고 픽셀화하고 벡터화한다고 주장한다특별한 이유’ 없이 인터넷에서 따서 인터페이스를 만들 뿐이라고 한다그러나 도큐멘타리 미디어가 일반적으로 세상의 스킨에 국한되지만도큐멘타리의 방법을 통해 보여주는 위기의 스킨은 상처로서즉 그 원인을 노출시키는 표면적 효과로서 나타난다.[i] 마찬가지로 노재운이 사용하는 스킨은 단순히 쓰다 버리는 일회성의 성격을 갖는 듯 하지만 그 스킨 속의혹은 주름의 내부를 엿볼 수 있게 한다그것이 한국인의 문화와 정신psyche일 수도 있고이미지의 보편성과 기호의 애매한 성격일 수 있다그 자신의 말처럼 스웨터를 은유하자면 직조된 물질들이 이루는 여러 이미지들의 패치워크이며 그 중 전쟁은 파편적 이미지다중요한 점은 전쟁의 이미지와 전쟁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의 디지탈 이미지 프로세싱 과정을 통해 역사적 사건들파시스트적 건축물들미디어에서 재현되는 권력의 꿈자본주의의 세련된 명령어와 이미지그것이 지닌 폭력성 등 권력과 과학기술과 정보의 공모성은 마치 중립적인 스킨인 것처럼 출몰한다.[ii]

             노재운의 남한 3부작 중 하나인 <3 오픈 업>에서의 첫 번째 장인 공장에서는 북한을 방문한 청와대 공식수행 비서관들이 양계장과 양돈장을 둘러보는 것에 대한 남한 미디어의 코멘트가 들린다그런데 이와 함께 보여지는 이미지는 여느 동물농장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개발공장과 미사일 발사대로 추정되는 인공위성사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터넷은 애초에 핵무기의 참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통신기술이라고 한다냉전 중인 1969년 미국이 핵공격을 받을 경우에도 군사기지들과 하청기업들과 대학들이 서로 긴밀한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자통신장치다.[iii]
그런데 그로부터 발전한 오늘의 인터넷을 통해 노재운은 영화적 기법인 몽타쥬를 사용하여 미사일 공장의 이미지와 양돈장에 관한 언급 사이에 괴리감을 제시함으로써 냉전의 정치학과 남북한의 관계그리고 한반도와 미국과의 관계를 시공간적 압축을 통하여짧은 시간 내에그러나 누구나 반복적으로 볼 수 있도록 버추얼 공간에 침투시키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작업은 이미지에 대한 진위성의 여부와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성찰하게끔 유도한다더 나가서 역사의 서술과 재현에 있어서 진위성과 진실성truthfulness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미국 인공위성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북한이 핵무기제조 시설을 지상에 세웠다는 것은 핵무기제조에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 듯 위장하기 위함이다일부러 인공위성에 노출되기 위한 전략이다.[iv] 그리고 인공위성에 포착된 이미지들은 곧 미디어를 통해 뉴스가 되고 우리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그러나 인터넷 검색엔진을 통해 얻는 수 많은 정보를 과연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일까그 정보가 사실 존재했던 사건의 자료를 제공하더라도 그것을 역사적 진실로 볼 수 있는 것인가에이왁스와 인공위성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모든 가시적인 대상에 대한 집착은 바로 패권주의적 충동에서 기인함을 증명하며이것은 새로운 제국의 양상이기도 하다뒤집어 말해서 그것은 비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한다화면에 보여지는 것은 미사일 공장일 수도 있고 양돈장일 수도 있다최근에 뜨거운 감자로 재부상한 북한의 미사일 스캔달도 역시 미사일일 수도 있고 인공위성일 수도 있다노재운은 핵미사일 공장을 보여주며 양돈장이라고 일컬으니그 간극은 너무나 커서 코믹하기도 하다그러나 우리는 Google이나 CNN과 같은 소위 권위있는 미디어에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가. “공장은 주류 이미지들에 대한 우리의 맹목적인 신뢰에 뒤통수 치기부정하고 싶지만 그것들에 길들여진 우리의 관습의 경쾌한 비틀기이며 우스꽝스러운 비판적 거리두기다.[v]

            <3 오픈 업>의 세번째 장은 조기경보기인데이 역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괴리로 이루어진다남한에서 방송한 남북한의 언어비교에 대한 언급이 들리는 중 보여지는 이미지는 미공군의 최첨단 정보수집기계인 조기경보기 에이왁스 (E-3 Sentry Airborne Early Warning; AWACS) 이다남한방송이 끝나자마자 들리는 목소리는 이 조기경보기의 오퍼레이터와 수신중인 미군경비군의 신호음이다에이왁스로 상징되는 미국의 감시체제는 펜타곤의 비젼혹은 펜타비젼의 연장으로서,[vi] 남북한의 분단을 지속적으로 응고시키는 메카니즘이다비릴리오가 말하는 시공간의 압축을 통한 장거리 감시 바로 그것이다.[vii] 전쟁을 미국 본토로부터 멀리 두기의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타자화하는 남한과미국으로 인해 남북한이 동시에 타자화되는 메카니즘을 보여준다.[viii] 

            <치명적 아름다움역시 인터넷에서 수집한 북한 미녀응원단의 사진들과 그들을 모방한 남한 미녀들의 사진을 조합한 몽타쥬이다.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라는 홍은철의 기묘한 요들송이 곁들여지는 이 작업은 남한 3부작의 다른 작업과 비교해 볼 때 비판적 거리두기라기보다는 상당히 감각적이다북한의 미녀응원단과 남한의 언론과 일반 남성들의 반응을 돌이켜보게 하는 이 작업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노재운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마치 영화에서 팜므파탈femme fatale이 온갖 억압적 욕망의 남성적 혹은 가부장적 에너지를 파국에 몰고가 결국 파멸시키고 해체시키듯 남북의 그 어떤 공식적 교류보다 우리의 무의식에 금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이산가족상봉에서 모든 의심과 불화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눈물만은 의심할 수 없듯이” 그는 북한응원단의 마지막 미소그리고 그에 화답하는 남한 탈렌트 여성들의 미소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작업 타이틀의 <치명적 아름다움>이란 이렇게 통제될 수 없는 흐름과 범람을 만들어내는 그 미소들을 지칭한다.[ix]

            노재운이 생산하는 데이터들이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지만인터넷이라는 가시적인 네트워크를 피해가는 또 다른 변증법적인 존재 역시 그는 차용하는데이것이 곧 오사마 웜이다오사마 웜도 그가 비커밍 오사마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한 것으로, ‘네트워크 이면의 네트워크로서 현대의 바이러스적인 것에 대한 은유이다세계적 차원에서 예를 들면 미국의 정보망이 잡지 못한 알카에다의 인터넷을 통한 정보는 모든 공식적 시선들에 절대로 잡히지 않는 영역을 지칭한다네트웍이라는 편재성익명성보편성민주성에 불구하고 드러날 수 없는 네트웍을 가시화하듯 그는 허접해 보이는 오사마 웜이라는 오브제를 만들어 서울의 특정지역을 점거하고 이동하게 한다오사마 웜은 정의될 수도 통제될 수도 없는” 남북한 미녀의 미소처럼 비록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복잡하며 다층적인 노재운의 작업은 디지탈시대에 구현되고 있는 새로운 작업방식으로서근래에 부상하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인 폴 챈 Paul Chan과 같은 작가와 유사성을 나눈다예를 들면 노재운은 냉전의 정치를폴 챈은 미국 공화당 집권에 대한 정치적 코멘타리를그리고 두 작가 모두 이라크 전쟁과 같은 정치적 이슈를 다룬바 있다최근 노재운은 저널 <>지의 중동에 관한 이슈의 페이지 상에 개입한 작업을 선보였는데그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충돌시키며때로는 서로를 보완하며또 때로는 서로를 환기시키며미디어와 정치적 현실의 관계를 시각화했다폴 챈 역시 자신이 바그다드에서 촬영한 사진을 포스터로 만들어 뉴욕시를 포함한 40여개 도시에 배급한 바 있으며부시정권의 이라크 침략 직전에 콘돌리자 라이스와 딕 체니 등의 캐리커쳐적 묘사와 더불어 군사활동의 클립들을 편집한 비디오작업을 소개한 바 있다.
두 작가 모두 미디어의 테크닉샘플링과 재활용의 정수이며또 인터넷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비디오아니메이션그래픽사진 등 여러 매체를 혼합을 통해 풍부하며 복잡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또 두 작가 모두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고 있다노재운의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아카이브인 www.time_image.co.kr 에서는 그가 채집하고 프로세스한 이미지들을 접할 수 있다폴 챈이 만든 웹사이트 내셔널필리스틴.콤 Nationalphilistine.com은 무려 16시간 이상의 음성레코딩을 접할 수 있는데그 내용은 작가 자신이 소리내어 읽는 기존의 텍스트들인데그것은 아도르노의 철학부터 피셔의 요리법까지 저명한 것과 그렇지 못한 개인적인 선택들을 망라한다두 작가의 이러한 웹사이트를 통한 작업들은 정보의 범람즉 하이퍼텍스트 등을 비롯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해 확산되는 하이퍼 내러티브의 개입즉 그들의 견해를 가시화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그들은 파국의 이미지들을 만화화포토샵화캐리커쳐화또 희화화하고 있는데그것은 미적인 요소와 정치적인 소재를 격리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상호오염의 생산적 가능성을 즐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릴리오에 의하면 원자폭탄 이후 21세기의 후임은 바로 정보폭탄 Information Bomb이다그것에는 정보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국가간의 평화를 파괴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x] 노재운과 폴 챈과 같은 이들의 작업이 전쟁의 시대의 산물이라면그것은 원자폭탄만큼의 위력이나 폭력성은 물론 결여되었지만 정보시대가 자본적 제국과 맞물림으로써 우리에게 강요하는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인 정치경제적 영향에 맞서는 작은 한 개개인의 정보폭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i] Jan Tulir,  “Review on inSite 2005,” Artforum, Nov. 2005, p. 249.
[ii] 하승우, “자본의 분할 전략과 동아시아의 ,” <트랜스아시아 영상문화>, 서울:현실문화연구, 2006), 133, 141.  이선영노재운전 리뷰스킨오브사우스코리아_온라인 데이터베이스 2004, http://time-image.co.kr/zeroboard/view/php?id=1stshow&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lct_arrange=headnum&desc=asc&no=3
[iii] 그러던 것이 70, 80년대에 기술의 발전과 비군사적 사용이 확장되면서 오늘에 이르러 컴퓨터와 인터넷 연결그리고 점차 휴대전화로도 사용 가능케 되었다.  Dennis Trinkle et al, The History Highway: A Guide to Internet Resources, (Armonk: M.E. Sharpe, 1997), 3-4, as quoted in Tessa Morris-Suzuki, The Past Within Us: Media, Memory, History, (London: Verso, 2005), 211.
[iv] Bruce Cummings, Korea’s Place in the Sun, (New York: W.W. Norton, 2005), 481.
[v] 나는 또 김수기 선생에게 이러한 해석의 빚을 졌다.
[vi] Bruce Cummings, War and Television, (New York: Verso), 1992.
[vii] Paul Virilio, Information Bomb, (New York: Verso, 2000), 13.
[viii] 김장언바로크적 시나리오노재운, http://time-image.co.kr/zeroboard/
[ix] 노재운, http://time-image.co.kr/zeroboard/… 그의  개인전 타이틀이 <스킨오브 사우스코리아>라고 명명되었듯이남한 3부작을 이루는 이미지들이 떠도는 사이버공간은 세계 어디서든 접속해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남북한의 관계에 대한남한에서 북한을 바라본남한의 한국인들이 만들고 소비한 이미지들의 몽타쥬이다여기서 너무나 명백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점은 북한의 극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인민들은 컴퓨터라는 장비와 인터넷의 접속성을 보유하지 못할 것이다이것은 바로 디지탈적 분단이다이것은 사이버세계와 주변화 사이버를 점유할  있는 이들만의 대화는 계속되고접속할 여건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자신들의 발언권마저 박탈되버리는 주변화의 연장을 의미한다올루 오구이베는 세계가 디지털화되고 사이버세상에서 접속하고 모든 것을 공유할  있다고 주장하는 프로미디어계의 주장을 비현실적이며 시기상조인 주장이라고 일축한다그는 소위  3세계인 아프리카와 같은 곳은 물론이며 최강대국인 미국에서마저 컴퓨터장비와 접속성을 결여한 인구는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있다. Olu Oguibe, The Culture Gam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4), 149-153, 172.
[x] Virilio, Ibid., 63.  Also see Scott Rothkopf, “Embedded in the Culture,” Artforum, Jun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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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모더니티와 기억의 정치(문영민/강수미 공저_현실문화연구)’ 실린 글입니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