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영화 - 시간과 프레임

About Time, 2009, interface view


세상의 모든 영화 - 시간과 프레임
시간에 대해 – 노재운 개인전 2009. 12. 10 – 2010. 1. 21 갤러리 플랜트

글 김장언 (기획, 비평)


‘닥터 후(Doctor Who)’에서 닥터는 ‘시간은 구처럼 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시간 여행자이자 시간의 제왕인 그는 ‘Blink’ 에피소드에서 자신의 타임머신인, 타디스(Tardis)를 ‘우는 천사’ 종족에게 빼앗기자 시간개념과 평행우주론을 DVD 서플에 파편적으로 수록하고 자신을 도와줄 ‘참새’를 기다린다. 닥터는 강변한다. ‘시간은 일직선상으로 진행하는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재로 시간은 구와 같은 것으로 앞뒤가 없이 하나로 뭉쳐진 덩어리와 같다.’

작가 노재운은 이번 전시에서 시간의 단면을 자신의 임의적 인터페이스로 드러낸다. 그는 닥터와 같이 시간이 앞뒤가 없이 하나로 뭉쳐진 덩어리와 같다고 보는 것 같다. 그것이 투명한 수정체인지 아니면 검은 구름인지는 아직 모른다. 왜냐하면 작가는 아직도 느와르와 SF 사이에서 여전히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짜장면과 짬뽕처럼 늘 미련이야 남겠지만, 이제 우리는 기스면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짬짜면이라는 변종도 있다. 하여튼 노재운이 이번에 보여주는 시간의 단면은 비극적 낭만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들의 결합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것은 잘 작동되기 보다 삐그덕 거린다.

이만희의 <휴일>이 호명되지만 그것은 그저 60년대식 낭만의 한 씬으로 기억되는 모래바람 부는 공원의 허름한 이 빠진 벤치일 뿐이고, 그 빠진 강목은 농담처럼 기념비가 되어 전시장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관람객들이 그 허름한 벤치에 앉았어야 했다고 작가는 이야기하면서도, 그 벤치를 세기의 벤치인양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에 올려놓고는, 폭설과 한파로 그 벤치에 눈이 수북히 쌓이자 이번 전시에 대한 하늘의 선물이라고 좋아한다. 50년의 시간적 공간을 드러내는 달력을 마주보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귀신보다 더 나쁘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은 평행 우주론에 의해서 평평해진 것이 아니라, 귀신보다 더 악한 인간들에 의해서 플랫해졌고, 그나마 사람보다 나은 귀신들에 의해서 미약한 입체감을 획득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태연히 자신의 브레인이 죽어버리는 그 순간 자신의 스크린인 망막에 비추어질 어떤 풍경을 나열한다. 브레인이 데드하듯이, 그렇게 영화도 끝이 난다.

세계를 하나의 영화로 고찰하는 작가는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모든 사건과 현상 혹은 감정까지도 어떤 영화적 장치 혹은 영화적 구성물로 인식한다. 여기에서 영화는 예술로서 혹은 대중문화로서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인식적 태도로서 ‘영화적인 것(the cinematic)’을 지칭함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상의 모든 영화’이다. 갤러리의 외부로 향한 창 조그만 구석에 설치된 이 빛의 수정체와 같은 세상의 모든 영화는 영화사에 등장했던 모든 영화적 프레임의 조합이자 우리의 역사에서 등장했던 모든 인식론적 틀의 조합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는 이 작고 빛나는 ‘세상의 모든 영화’로 시간이라는 공간을 가르고 자신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한번’ 작동시켜본다. 이제 그는 하나의 검을 갖게 된 것이다. 앞으로 그가 무엇을 가르고 무엇을 드러낼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검객이 되었고, 그의 시나리오는 점진적으로 섬뜩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 미술, 2010)